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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녹색 감정 식물>

by 가던경 2022. 7. 27.

녹색 감정 식물

이제니


식물이 말라죽기도 하는 밤이었다
수풀은 슬픔을 잠식한다
습기는 습기로 피어오른다
많은 것들이 죽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거의 볼 수 있었다
어두운 식물이 자라나고 있었다
말하지 못하는 말이 있었다
새의 깃털은 물감을 뿌린 것처럼 선명했다
넝쿨과 넝쿨이 안간힘을 다해 서로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가느다란 실 같은 마음이 서로를 잇고 있었다
실을 토하는 벌레의 등을 누르자 녹색의 즙이 흘러나왔다
어떤 죽음은 사소하게 잊혀져갔다
가위로 오려 만든 종이인형의 그림자
배경이었던 것들이 백지 위에서 불쑥 일어서곤 했다
어두운 수풀의 어두운 새의 어두운 깃털이
누군가의 얼굴이 뭉개지고 있었다
녹색 식물의 입이 흔들리고 있었다
녹색의 감정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흘러내릴 수 있다면 날아오를 수도 있겠지
날아오를 수 있다면 사라질 수도 있겠지
물과 얼음
물과 수증기
액체의 부피는 변하지 않는다
영혼의 질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잘못 내디딘 한 발자국은 이미 길을 잃었다는 말이다
이제는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싶었다
수풀 아래 묻혀 있던 잊혀진 기차 레일
남색의 곤색의 녹색의 꽃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빛의 회절 속에서 진동하는 녹색
녹색 광선이 너의 얼굴을 조각내고 있었다
눈은 떼어 여치에게로
입은 떼어 앵무에게로
귀는 떼어 귀뚜라미에게로
코는 떼어 조약돌에게로
분별 없는 심장이 그것의 감정을 녹색으로 물들였다
내게서 가장 멀리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수풀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계단은 아래로 향하는 무수한 선분을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 죽어가면서 태어나고 있었다
무언가 지워지면서 되살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