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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해, 오늘도 아름답게
oneday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

by 가던경 2016. 8. 29.

요새 또 불쑥 드는 생각은,

내가 잘 살고 있나?라는 물음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좇고 살고 있나.

 

신형철 교수님의 문장이 많이 그립다.

위로받고 싶으므로,

인용.

 

사랑의 발명

이영광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이 시를 무정한 신 아래에서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기 시작한 어떤 순간들의 원형을 보여주는 시로 읽었다. 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손에 쥐고 환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신형철의 격주시화, 이영광 편, 한겨레신문, 2016.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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