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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해, 오늘도 아름답게
drama

우리, 버리지마.

by 가던경 2021. 10. 20.

정인: 지호씨,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요? 무슨 일 있었어?
지호: 정인씨, 정인씨도 우릴 버릴 거예요? 그럴 거면, 지금이라도 괜찮아요. 괜찮아.
정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호: ...
정인: 어? 무슨 말이냐고. 뭐 때문에 이래요?
지호: 정인씨 마음, 믿어도 돼요? 말해봐요. 절대. 절대 변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정인: 지금 날 못 믿는다는 거예요?
지호: 믿어도 되냐고 묻는 거예요.
정인: 내가 변할 것 같아요?
지호: 모르지. 알 수가 없지.
정인: 너무 취했어. 내일 다시 얘기해요.
지호: 대답을 못하네. 그렇구나.


----

 

정인: 할 말이 없는 거예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거예요?
지호: ...
정인: 다시 말해줘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건지 변명거리도 못 만들 만큼 기억을 못하는 건지 묻는 거예요.
지호: 둘 다.
정인: 아무리 취했어도 전혀 기억을 못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지호: 변명으로 들릴 거 알아요. 근데 진짜 너무 취해서 술김에 나온 거지, 내가 정인씨를 그렇게 생각했겠어요?
정인: 어떻게 생각했는데요?
지호: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너무 미안한데, 그런 생각 단 한 순간도 한 적 없어. 진짜 어떻게 우릴 버리니 어쩌니, 입으로 옮기기도 민망해.
정인: 나야말로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에요.
지호: 거 봐.
정인: 근데, 나도 버릴 거냐고 물었어요. 정인씨도 우릴 버릴 거냐고. 말꼬리 잡는 거 맞아요. 너무 오버다 할 것도 알고요. 근데 내가 받은 솔직한 느낌은, 근데 이정인 너도 똑같은 거 아니야?였어요. 그런 의도 아니었던 거 알아요. 그래서 내 솔직한 느낌이었다고 하잖아. 지호씨의 상처가, 시간이 지났다 해서 흔적도 없이 아물었을 거라고 생각도 안 했어. 그렇다고 해도 술 때문이니까, 무의식중에 나온 말이겠거니 덮어지는 것도 아니야.
지호: 내가 어떻게 정인씨를, 하... 내가 지금 너무, 너무 답답한 게 솔직히 다 기억이 안 나. 그래서 변명이든 반박이든 사과조차 제대로 못하는 거예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오히려 오해만 더 만들 까봐. 진짜 나도 미치겠다니까.
정인: 사과받자는 거 아니에요.
지호: 잠깐만. 정인씨가 말한 대로 내 과거 때문에, 내 상처 때문에 안 그러려고 해도 자격지심이 없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나도 모르고 있던 불안이 나온 것뿐이야. 단순히 그거라니까?
정인: 내가 그래요. 나는 만났던 사람을 배신했고, 그걸 지호씨한테 고스란히 보여줬잖아.
지호: 억지야.
정인: 지호씨처럼 나도 자격지심이야. 알아. 날 전혀 믿지 못한단 거 아닌 거 아는데. 알면서도 마음이 불편해요.
지호: 내 마음을 열어서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난 이정인이 아까워서 밀어냈던 사람이야. 그렇게 생각했던 여자가 나한테 오려고 그렇게 힘든 노력을 했는데, 내가 그 마음을 의심했다는 게 말이 돼?
정인: 지호씨가 아니라 내가 날 의심하는 거예요. 많이 얘기했었죠. 유지호가 욕심난다고. 지호씨는 날 밀어낼 생각도 해봤었지만, 난 놓을 수 없단 생각만 했어. 그 욕심 때문에 내가 너무 준비 없이 뛰어든 것 같아.
지호: 내가 어떻게 하면 정인씨 마음이 풀리겠어요?
정인: 지호씨가 아니라 나라니까? 지호씨 더 곤란하게 하려고 나 때문이다 쇼하는 거 아니야. 사랑해요. 이렇게 사랑하면 되는 건 줄 알았어. 전부 이해하고 덮어줄 수 있다고 멋대로 생각, 아니 생각도 안했어. 그냥 저절로 되는 건 줄 알았지. 근데 지호씨의 과거가 이렇게 잠깐 튀어나오는데도 철렁한거야. 꼭 외면하려는 걸 맞닥뜨린 것처럼. 그래서 알았어요. 내 마음이 아직 모자라단 걸. 어떤 상황이든 내 부족함을 들키게 되면 우선 피하고 싶잖아. 지금 내가 딱 그래요. 내 자신을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 넘어가 줄 법도 한데. 이것도 이해를 못해주나 싶겠지만. 미안해요. 다른 때 밥 먹듯 했던 거짓말도 안 나와. 쿨한 척 괜찮은 척 속이기 싫어. 나한테 그래주는 것도 싫고.
지호: 맞아요. 속이기도 하면서 살았어. 지난 것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두려움이 남아서.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정인씨를.
정인: 지호씨 마음을 이해못한다는 게 아니야.
지호: 그럼 내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알겠네.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도 알겠고. 이정인. 맨정신에 정확하게 다시 말할게. 우리, 버리지마.

드라마 <봄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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