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발견한 컵.
누군가의 선물일텐데, 문구가 반갑다.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부터 고민이라는 걸 했다.
아주 잠깐.
내 고민은 언제나 그렇듯 잠깐이니까.
결정했지만, 결정하지 못했다.
그 결정이 완전히 내 마음에 드는 결정이 아니어서 그럴까.
그럼 나는 또 찰나의 고민을 다시 해야 하고, 그리고 순간의 결정을 해야만 할 때가 오겠지.
결정이란 것도 항상 순간이었으니까.
아침에(컵을 발견하기 이전의 아침),
잠깐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나.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그러다 문득, 드라마 <프로듀사> 12회 백승찬(김수현)의 대사가 떠올랐다.
<프로듀사>(KBS) 12회 갈무리.
승찬: 어젯밤, 제가 집에 걸어갔는데요.
예진: 걸어가? 거기서 너네 집까지? 거리가 얼만데. 너 밤샜니?
승찬: 아니요. 샌 건 아니고. 다섯시쯤 도착했습니다.
예진: 아. 미쳤다 너.
승찬: 계속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예진: 어 미안해. 계속해.
승찬: 그렇게 오래 오래 걸으면서 생각을 했거든요. 다시 찍고 싶다.
예진: 뭐? 뭘 다시 찍어?
승찬: 내 인생이 어떤 프로그램이고 난 그 프로그램의 주인공이고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찍고 있다면,
예진: 오, 비유봐. 너 진짜 PD 다 됐구나. 어 계속해.
승찬: 그렇다면, 다시 찍고 싶다. 어디서부터 다시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곰인형에 내 마음을 녹음하지 말았어야 하는지, 아버지가 장기 두자고 나오라고 하실 때 선배만 그 방에 두고 나가지 말았어야 하는지, 아니면 선배가 놀이터로 나오라고 할 때 차라리 가지 말았어야 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선배가 거절을 하지 못하게 어제 데이트, 하지 말았어야 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 훨씬 전에 선배랑 함께 있는게 좋아지고 선배가 준모 선배를 바라보는게 싫어졌던 그때, 그때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다시 해야 하는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시 찍고 싶다.
예진: 왜? 왜 다시 찍고 싶어? 날 좋아하지 않았으면 마음도 안 아프고 편했을 것 같애?
승찬: 아니요. 더. 제대로 좋아하고 싶어서요. 제가 너무 서툴렀고 부족했고 급했으니까. 어리고 촌스러웠으니까. 더 멋진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더 어른스럽게, 선배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세련된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지금 컷하고, 여태껏 다 편집하고 다시 찍어 달라고 하고 싶다. 내내 그런 생각 하면서 걸었습니다. 불가능한 걸까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난 또, 고민.
나는. 드라마 PD가 하고 싶다.